수채화 한 장과 에피소드 한 편이 나란히 놓이면
단순한 이야기는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됩니다.
이 플랫폼은 그 세계를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왼쪽의 할아버지는 공학도입니다.
컴퍼스와 자, 설계 도면과 원자 기호—
논리와 구조로 세상을 읽어온 사람입니다.
오른쪽의 할머니는 미대생이었습니다.
팔레트와 붓, 꽃과 물감 자국—
감성과 색채로 세상을 그려온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러나 달랐기 때문에 함께였고 행복했습니다.
로고 하단의 문구처럼, Since 19XX, 사랑과 조화로.
이 세상에 이야기 플랫폼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를 더했습니다.
글을 읽기 전에, 먼저 그림을 봅니다.
수채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먼저 전달합니다.
독자는 이미 그 감정 속에 들어간 채로 글을 읽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플랫폼이 만들어 가는 독서 경험입니다.
공대생 할아버지의 세계처럼, 이야기는 논리적 구조 안에서 흘러갑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고, 대화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독자는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미대생 할머니의 세계처럼, 수채화는 정보가 아닌 감정을 전달합니다. 노을빛 거리, 커피잔 위의 스팀, 나뭇잎이 흔들리는 오후. 독자는 그 순간을 '느끼게' 됩니다.
이 플랫폼이 추구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두 언어가 나란히 놓였을 때 만들어지는, 혼자로는 불가능한 그 특별한 울림입니다. 글만도 그림만도 아닌, 둘이 함께일 때의 세계.
같은 에피소드를 읽고 나서 수채화를 보면, 아까와 다른 장면이 보입니다. 수채화를 먼저 보고 글을 읽으면, 글이 다르게 읽힙니다. 이 플랫폼은 그 순서까지 설계합니다.

설계도면 · 숫자 · 구조 · 효율
"왜?"를 묻는 사람

수채화 · 색채 · 감성 · 순간
"어때?"를 묻는 사람
이 두 사람의 40년 이야기가 이 플랫폼의 뿌리입니다.
에피소드는 사실과 다른 가상의 스토리로 구성했습니다.
크게 만들기보다 깊게 만들겠습니다.
많이 만들기보다 정성껏 만들겠습니다.
빠르게 가기보다 오래 남을 것을 만들겠습니다.
에피소드 하나가 올라올 때 수채화도 하나 함께 올라옵니다. 글과 그림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쌍입니다. 콘텐츠를 쌓는 게 아니라, 쌍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 이야기의 두 주인공은 끝없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이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 플랫폼은 다름을 갈등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야기는 작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가 공감하고, 반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 비로소 이야기는 완성됩니다. 독자의 반응이 다음 에피소드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비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것을 다른 곳에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비교는 우열이 아닌 방향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수채화와 이야기가 공존하는 플랫폼은 아직 아무도 제대로 만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이라서 느리지만, 처음이라서 자유롭습니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쌓아 갑니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수채화가 함께합니다. 독자들이 플랫폼의 문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아, 여기는 글을 읽기 전에 그림을 먼저 보는 곳이구나."
수채화는 한 사람이 그리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독자가 에피소드를 읽고 그린 그림,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그것들이 이 갤러리를 채우기 시작할 때, 이 플랫폼은 진짜 살아 숨쉬게 됩니다.
60편의 에피소드와 60장의 수채화가 완성되면, 그것은 책이 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형태의 책. 한쪽 페이지에는 이야기가, 다른 쪽에는 수채화가. 논리와 감성이 나란히 누운 책.
"수채화 × 이야기" 라는 이 플랫폼의 문법이 다른 작가의 이야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작가의 이야기가 각자의 수채화와 함께 이 공간을 채워가는 날을 꿈꿉니다. 그것이 이 플랫폼의 최종 형태입니다.
이야기를 읽기 전에 수채화를 먼저 보세요.
수채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읽으세요.
그 사이 어딘가에 이 플랫폼이 있습니다.